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마알갛고 따뜻한

회복왕 김튼튼 2016. 11. 21. 02:25


잠이 오지 않는 밤에는,

잠을 자기 아쉬운 밤에는

반갑고 그립고 따뜻한 이들과 나누었던 대화들을

찬찬히 되짚곤 한다.


대부분 열 살 남짓 차이가 나는 그녀-혹은 그-와

아무렇지 않게 반말로 인사를 나누고,

잠깐 눈을 마주치며 미소짓고,


이름보다 익숙한 별명을 슬그머니 부르고,

낯간지럽지 않게 '사랑해-'라는 말을 건네고,

당연하게도 '나도 사랑해'라는 말을 되돌려주는.


내내 마를 새 없었던 지난한 시간들은

그 사람들의 온기로 조금씩 습기를 내뱉었고,

그들만큼은 아니지만 아무튼 따스한 햇살에

축축한 시간들을 참깨처럼 널어두고

그것들이 마르는 소리에

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을 수도 있었다.


고맙다, 사랑한다, 따위의 말이

맞춘 듯 어울리는 사람이 멀지 않은 곳에 있어

올 겨울은 마알갛고 따뜻할 예정이다.


전기 장판과 두툼한 담요 사이처럼,

초록빛 도는 못난이 귤이나 모닥불 군고구마처럼.












'마알갛고 따뜻한'은

학교 선배 언니가 졸업논문으로 만들었던

시집의 제목 후보 중 하나였다.

결국 그 시집엔 조금 더 가을스런 이름이 붙었지만

나는 이 단어의 조합만큼

마알갛고, 따뜻하고, 촛불 같은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

지금도 이따금씩 입 안에서 우물거려 보고는 한다.


마알갛고 따뜻한.

마알갛고 따뜻한.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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